일본 시마네현(島根縣)의 이즈모(出雲)지방에 오쿠니(御國)라는 무녀(巫女)가 살았다. 그녀는 1603년 이즈모 지방의 큰 신사인 이즈모 대사(出雲大社)의 중수를 하기 위한 순회 모금을 위하여 여러 곳을 순회하면서 신사 경내의 가설무대에서 벌인 오쿠니의 별난 춤은 삽시간에 뭇 사람들을 매료시킴으로써 일약 인기의 대상이 되었다. 염불에 맞추어 춤을 추었는데, 이 춤이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가부키(歌舞妓, 歌舞技)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오쿠니는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스스로 남자 차림을 하고 술집을 드나드는 장면, 젊은 작부들과 놀아나는 장면 등을 연기로 보여 주었다. 때로는 일본 전통 현악기인 샤미센(三味線)을 들고, 포르투갈 남자 천주교도들이 입는 이국적인 양복바지를 입고, 커다란 십자가를 목에 걸고 치렁치렁 장식한 칼을 차고 무대에 등장하여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교의 금지 규율 때문에 여자가 대중적인 무대에 나서는 일은 금지되었다. 그러던 중에 오쿠니 이 후 갑자기 눈부신 미녀들이 나와서 가무를 하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매료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부키는 가부쿠(傾く)라는 어원에서 출발하였는데 ‘평평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다’ ‘우스꽝스럽게 하다’ 또는 ‘멋대로 행동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남의 눈에 확 띄도록 별난 언동을 하는 사람을 ‘가부키모노(かぶきもの)라고 불렀다. 가부키는 오늘날의 연극이 스토리를 중시하는 것과는 달리 음악과 춤이 중심이 된 일종의 무용극이다. 오쿠니 이 후 각지에서 가부키가 흥하자 그 가운데는 매춘을 겸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가부키 여자 배우들 때문에 일어나는 풍기문란 사건이 끊이지 않자, 가부키 발생 후 26년째 되던 해인 1629년에는 가부키 금지령이 내렸다. 그 후 여러 가지 금지 조건을 달아서 가부키가 재 허가를 얻었으나 이후로 여자가 가부키 무대에 오르는 일을 없어지게 되었다.

여자 가부키 대신 등장한 미소년들이 여장을 한 가부키도 새로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하는 여자 배역을 온나가타(女方)라고 하는데 이는 가부키의 중요한 요소이다. 에도(江戶) 시대의 제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는 가부키를 하는 미소년들을 매우 좋아하였는데, 소년 가부키를 자기 곁에 불러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소년들과 귀족 부인들과의 불륜 관계, 미소년이 남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등의 문제가 대두되고, 소년 가부키를 비호하던 쇼군도 세상을 떠나자 소년 가부키는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를 들어 이윽고 1652년에는 전면적인 출연을 금지시켰다.

1653년 다시 흥행허가를 받은 가부키는 대사와 동작을 주제로 삼고 소년 가부키를 출연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따라서 가부키가 나아가야 할 길은 극의 내용을 충실하게 구성하는 일과 기예(技藝)를 갈고 닦는 길밖에 없었다. 극중 여자 역을 맡은 남자 배우들은 얼굴에 유성 염료로 흰색, 푸른색, 붉은색 등으로 매우 짙은 화장을 하고 여성의 심리와 거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실제 여성보다 더 아름답고 더욱 섬세하고도 다소 과장된 표현도 불사했다.

메이지 유신 이래 서양문화가 일시에 흘러들어 오면서 가부키도 서양 연극 기법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일본 전통연극으로서 잘 계승되어 오고 있다. 가부키는 고대나 중세의 귀족이나 무사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대물, 근세 서민들의 실생활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세와물(世話物 ) 그리고 다이묘(大名)들의 번(藩)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오이에모노(お家物)를 주로 소재로 하고 있다. 1748년 초연 당시부터 공전의 대인기를 누린 작품으로 ‘주신구라(忠臣藏)’가 있는데, 1704년 실제 일어났던 복수 사건인 아코낭인(赤穗浪) 47명의 활약담이다. 아코성의 성주 아사노 나가노리(淺野長秬)의 억울한 자결에 대해 아사노의 부하들은 주군을 잃고 일자리도 없이 낭인이 되었지만 주군의 복수를 맹세한 뒤에 각자 흩어져 살면서 가난과 외로움을 견디면서 복수의 날을 기다린다. 드디어 약속했던 날 주군을 죽게 한 기라(吉良)의 저택을 쳐들어가서 숯 창고에 숨어있던 기라를 찾아 목을 베어 주군의 무덤 앞에 바치고 향을 피운다는 내용으로 이 작품만 공연하면 대 성황을 이뤄 극단 기사회생의 특효약이다.

우리는 가부키나 주신구라에서 일본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속셈을 읽을 수 있다. 최근 일본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39종 주 21종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그 목적이 일본의 젊은 미래 세대들을 세뇌시킨다는데 더욱 우려가 크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실효적 지배라는 면에서 보나 대한민국 영토가 너무나도 확실한데 일본정부와 극우단체들은 매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검정교과서에 수록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니 선린이웃 국가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 선조들은 각양각색의 탈을 쓰고 춤추면서 억압에 저항하고 풍자하였으나, 탈을 벗으면 우리 본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의 가부키의 ‘멋대로 행동하다’의 뜻과 함께 회칠한 탈은 벗을 수도 없고,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알 길이 없고, 극중 대사 역시 일본 젊은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주신구라’를 자주 무대에 올리는 이유도 충신이라는 가면을 쓰고,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것은 일본 역사이기도 하다. 독도 주변에는 우리의 영해와 경제수역이 있으며, 광물자원은 물론 수산자원의 보고이다. 이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주권수역이다. 일본에서 독도로 오는 독도로(獨島路)의 신호등(信號燈)은 빨간색임을 일본은 직시하여야 한다.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린다면 그 결과는 일본이 더 잘 알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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