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셋째 주 일본 혼슈(本州) 서부에 위치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이 동쪽에 위치한 오사카(大阪), 나라(奈良), 교토(京都)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20년만에 다시 찾아왔다. 오사카는 고대에는 나니와(難波), 중세 이후에는 오사카(大坂) 또는 고사카(小坂)로 부르다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현재의 지명으로 고쳐졌다.

오사카에는 일본이 자랑하는 오사카성(大阪城)이 있다.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는 권력을 잡은 후에 수운(水運)이 편리한 우에마치(上町)대지에 천하 쟁탈의 기점을 마련하기 위하여 축성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하급무사의 아들인 천민(농민)출신으로 사루(猿·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진 약삭빠른 꾀돌이었다. 일본의 센고쿠(戰國) 아즈치시대(安士時代)의 무장(武將)으로 일본 통일을 이룩하겠다고 일어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의 말단 수하 장졸이었으나 그는 노부나가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그의 짚신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그가 방에서 나오면 따뜻한 신발을 신도록 했고, 노부나가가 말을 탈 때는 등을 구부리고 엎드려 쉽게 탈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전장에서도 지략과 함께 매우 용감하여 매번 승리하였고, 승승장구하여 노부나가가 혼노지(本能寺)에서 모반을 한 그의 부하(明智光秀)의 습격으로 죽은 후에 반란군을 토벌하고, 그의 후계자가 되는 실권을 장악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성에 5층 8단에 검은 옻칠을 한 판자와 금박 기와, 금장식을 붙인 호화로운 망루형 천수각(天守閣)을 완성하여 새로운 천하 권력자의 권위를 과시했다. 다이죠다이진(大政大臣)과 간파쿠(關白)가 되어 1587년 반대세력을 모두 굴복시키고 일본을 통일함으로써 모모야마(挑山)시대를 열었다.

일본 국내가 통일되자 그 동안 어떤 통치자도 시도하지 못했던 중국대륙을 정복하여 자신의 위세를 떨치고, 그간 노부나가에게 집중된 국민들의 존경심을 자신에게 돌리고, 토지를 몰수당한 다이묘(大名)나 지방 호족 세력의 높은 불만을 해외로 돌릴 필요가 제기된 것이 명(明)을 치기 위하여 길을 빌려달라고 하면서 1592년 조선을 침공한 것이 도요토미의 ‘임진왜란’이나 그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조선 침공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시 군대를 동원하여 정유재란을 일으키지만 또 다시 실패하고, 정유재란 중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후시미(伏見)성에서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그 후 1615년 에도막부(江戶幕府)가 도요토미가(家)를 쓰러뜨리기 위해 벌인 ‘오사카 여름의 전투’에서 오사가성은 파괴되고 천수각도 불타버렸으며 도요토미 가문은 멸문의 화를 당하였다. 그 후 1626년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는 정권이 교체된 것을 천하에 알리기 위해 도요토미의 오사카성 영역에 새로운 석벽을 다시 쌓아올려 성을 새롭게 구축하여 도요토미의 천수각보다 더 큰 규모로 오사카성 천수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이 천수각도 1665년에 화마에 소실되고, 세 번째로 지금의 천수각은 1931년에 당초 도요토미가 축성한 오사카성의 천수각을 본떠 세워졌다.

이 오사카성은 너무나 견고하게 세워졌고, 내. 외성에 각각 물을 가두어 놓은 해자가 이중으로 둘러져 있고, 엄청난 크기의 바위로 잉카문명의 축성술에서나 볼 수 있듯이 정교하게 다듬어져 쌓여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34-1616)는 ‘세키가하라(關原)전투’에서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등 그의 지지 세력을 제거하고 지방 제휴를 압도하여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장악하고 에도(지금의 東京)에 막부를 개설하고 일본 봉건제 사회를 건설하는 초석을 놓았다. 오사카의 평원에서 펼쳐진 세키가 하라 전투는 오늘의 일본의 근대와 근세의 획을 긋고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역사적인 사건이나, 오사카에 머무는 동안 몇 사람에게 이 장소를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현대 일본인의 역사인식을 가늠해 볼 수 있었는데 우리라고 크게 다를까?

오사카 외각에는 2001년 미국이 국외에 최초이자 세 번째로 설립한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를 테마로 한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USJ)’이라는 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다. 공룡시대를 재현한 쥬라기공원(Jurassic Park)과 영화 죠스(JAWS)에 나오는 실물 크기의 식인상어, 육지를 찾아 바다를 떠도는 모험영화인 워터월드(Waterworld)와 화재영화인 타워링(Towering)에서의 보았던 불의 역류(Backdraft)의 공포 그리고 스파이더맨(Spiderman)등 볼거리, 즐길거리와 탈거리등이 압축 설계되어 있는 곳이다.

필자는 아침 10시30분 이곳에 입장하자마자 안경의 나사가 헐거워져 안경유리 한쪽이 빠져  큰 낭패에 봉착했다. 이곳은 물론 근처에 안경점이 있을 리 만무한 외각이고 보면 머리 회전을 아무리 해도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궁리 끝에 게스트 서비스(Guest Service)라는 간판이 보이길 래 이곳에 들어가 사정을 설명하고 방법이 없는지 반신반의하면서 문의하였다. 그런데 이곳에 근무하는 여직원의 말이 너무나 반가웠다. 고객 불편사항은 전부 해결해 드린다는 것이었다. 이곳 저곳 서랍을 뒤져 아주 작은 나사돌리개를 찾아 능숙한 솜씨로 안경알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필자는 너무나도 작은 일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하루의 관광 일정에 지장이 없게 된 것이 다행이 아니라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을 졸도케 해야 한다는 그들의 세심하고 완전무결한 봉사정신(마케팅?)을 단편적이나마 그곳에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에 관한한 모든 분야에 예외 없이 항일이요 극일(克日)을 외친다. 우리는 변하지 않고 이런 정신만으로 일본 위에 자리매김하고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한.일 FTA 협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우리를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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