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차(茶)에 대하여 문외한인 필자가 일본의 다도를 논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으나 일본의 다도(茶道)를 이론적으로 접할 기회가 있어 그 속내를 알아보려고 한다.

일본은 차를 먹는 행위를 심신을 세련되게 가꾸는 생활의 예술이라고 해서 도(道)를 붙여 형식미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차의 고전적인 형태는 원래 중국과 한국과 일본이 서로 유사했다. 차는 약용으로 마시고, 부처님께 공양물로 올리기도 하며, 참선(參禪)하는 스님들의 정신을 맑게 하는 음료로 쓰였다는 점은 삼국이 공통이었다. 한국의 고대 다서(茶書)에는 다도라고 하기보다는 다례(茶禮)라고 하고 있으며, 중국의 문헌에도 다법(茶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다도는 일본인들이 차를 달여서 마시는 여러 가지 규칙을 정하고 이 규칙을 통하여 차를 즐기는 일을 다도(茶道)라고 정의했다. 즉 유도(柔道)에서 도를 붙인 경우와 같다. 그리고 중세 이후 일본에서는 직업적으로 차를 다루는 센노 리큐(千利休)같은 다인(人)이 활동하여 일본 고유의 다도를 만든 이후로 삼국의 각기 크게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특히 일본인들은 다도를 통해서 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선의 경지란 다도의 경지와 같은 것이라고 하는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이 성립되었다.

주인이 다실에 손님을 초대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다회(茶會)라고 한다. 스승이나 제자 또는 친구를 초대하여 다도를 즐길 수 있도록 다실(茶室)과 다도구(茶道具)를 갖추어 놓는다. 다실은 소박한 맛을 풍기도록 꾸미는데, 보통 초가로 지붕을 만들고, 벽에는 흙을 발라 자연스럽게 한다. 주인은 안쪽에 있는 출구로 먼저 다실에 들어가서 손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손님들은 작은 문(니지리구치)을 통해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낮추고 기어들어가듯이 다실로 들어간다. 이 문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 60센티미터의 작은 문이다. 이 문을 이렇게 작게 만든 것은 다실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 속세 신분의 귀천을 떠나 대등한 자격으로 만나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문을 작게 만든 것이다.

다실 안으로 들어와 앉은 손님과 주인이 인사를 나눈 뒤, 주인이 로(爐)라는 실내용 화덕에 숯불을 피우면 손님들은 숯불이 피는 모습을 감상한다. 주인은 향(香)을 피워 정치를 돋운 뒤 준비해 두었던 회석요리(懷石料理)를 내어 손님을 대접한다. 회석이란 원래 불교에서 나온 말로 선방(禪房)에서 수양하는 젊은 승려들이 겨울밤 공복에 시달릴 때, 이를 이기기 위하여 돌을 따뜻하게 데워서 품속에 넣어 허기를 잊으려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일시적으로 허기를 달랠 정도 분량의 간단한 식사를 가리킨다. 밥 한 주먹, 반찬 한두 가지, 국 한 그릇으로 차린 조출한 상차림을 말한다.

회석요리를 먹은 후 손님들은 일단 정원으로 나간다. 손님들이 나가서 모래로 만든 물결무늬 위에 징검다리까지 만들어 놓은 정원을 감상하고 쉬는 사이 주인은 다실에 걸어 두었던 족자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꽃을 장식하고 차를 준비한다. 준비가 끝나면 주인은 걸어 두었던 징을 치면 손님들은 징검다리를 밟아 다시 다실로 들어온다. 주인은 먼저 맛이 진한 차인 농차(濃茶)와 다과를 낸 뒤 이번에는 맛이 엷은 차인 박차(薄茶)를 낸다. 이 동안에 손님과 주인은 이야기도 나누고 시도 짓고, 주인의 다도구나 다실에 대한 감상과 칭찬을 하며 다회를 즐긴다. 다회는 보통 4시간 정도이고, 손님의 수는 5명 이내 그리고 세속적인 잡담, 금전 이야기, 남녀 이야기 및 정치 이야기는 금기 사항이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일본 다도의 기본 정신을 화(和). 경(敬). 청(淸). 적(寂)의 사규(四規)라고 말한다. 일본의 차 문화는 나라시대부터 중국에 파견된 견당사(遣唐使)와 그 후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승려 에이사이(榮西)가 두 차례에 걸 처 중국에 가서 선종과 함께 중국의 다문화를 수입하여 일본 고유의 다문화를 이루어 놓았다. 17세기 이래 센노 리큐(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권력 경쟁에 패하여 자살의 자손들과 제자들에 의하여 계승된 이에모토 제도(家元制度-면허제도)에 의해서 오늘날 다도의 각 유파는 정통의 수장인 이에모토를 정점으로 하여 수 백 만 명의 문하생을 거느리고 활동하고 있으며 이케바나(꽃꽃이, 花道)와 함께 일본인들 정신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다도는 선(禪)보다는 차(茶), 차보다는 다기(茶器)와 다실(茶室)을 중시함으로써 심각한 기물주의(器物主義)와 형식미에 빠져있다고 보고 있고, 무사도의 성격을 탈피하지 못한 ‘사무라이 다도’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의 다례가 사방이 탁 트인 정자나 누마루에서 자연 풍광을 바라보면서 차 마시기를 좋아하는 열려진 어눌함이요 열려진 미학이라한다면, 일본은 형식미에 이어 폐쇄된 완결미, 자폐성의 미학으로 비극을 느끼기까지 한다고 한다.

필자의 오랜 실무경험으로 보아 지난 날 수십 차례에 걸친 한·일간의 수산분야 협상에 있어 예외 없이 매우 힘들고 어려웠다. 반면 한·러간의 수산협상은 매우 수월했다. 한·러 양국은 결론을 중시하는 협상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러간의 협상은 우리와 같은 어업협상 임에도 지루할 정도로 길고 결론이 쉽게 나질 않았다. 왜냐하면 다실에 들어갈 때의 겸손(?)함과 다도의 형식을 중시하고, 징검다리를 하나씩 밟아 입실하는 일본인 특유의 협상 기질이 러시아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방법이고 각기 장단점은 다 있다. 앞으로 한·중은 물론 한·일 간에도 FTA협상이 예고되어 있다. 만일 일본의 다도를 통해 일본인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몸가짐과 협상과정과 형식을 중요시 한다는 그들의 기본정신을 이해한다면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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