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그릇의 문화사이자 변천사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재질과 어떤 형태의 그릇을 사용하였는가하는 점은 특정 시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이고 또 역사가 오래된 것은 질그릇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인류의 역사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으로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는 강렬한 태양과 진흙과 물이라는 천혜를 입어 B.C. 6,000경부터 토기를 제조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햇빛에 말린 토기였지만 곧 불로 굽게 되면서 흑색, 갈색, 적색의 토기가 나타났다. 질그릇의 ‘질’은 흙을 지칭하는 것으로, 바로 흙을 이용해서 만든 그릇은 모두 질그릇(토기)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B.C. 4,000년경 ‘블랙톱’이라 불리는 흑두적색토기(黑頭赤色土器)가 많이 제작되었다. 또, 띠 모양의 기하학적 무늬 외에도 동물, 식물, 물고기 등을 새긴 채문토기가 다수 제작되었다. 7세기 초에 발흥한 이슬람은 7세기 중엽에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이집트를 정복하고 8세기에는 광대한 영토 확장 중에 이슬람 토기는 그 때까지 볼 수 없었던 뚜렷한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조몬시대(繩文時代)인 1만 3,000년 전 무렵에 최초의 토기인 융선문(隆線文)토기가 나타났으며 이 토기는 규슈 나가사키현의 후쿠이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조몬시대라는 용어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토기의 표면에 새겨진 무늬에서 비롯된 것으로 특징으로는 일상생활에서 토기를 사용하였고 도토리, 밤, 잣 등 견과류를 끓이거나 삶는 데 필요하였기 때문에 토기가 발명된 것이다.

조몬시대에는 수렵, 어로 등을 기본적인 생업으로 하였다. 그러다가 약 6,000년 전 무렵 지금보다 2도 높은 기후의 온난화로 해수면이 가장 높아지면서 일본의 열도의 해안을 따라서 많은 패총이 만들어진 사실이 그러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획득한 식료 특히 물고기를 처리하는 도구로서 토기 즉 질그릇이 만들어짐으로써 종래 음식물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도 삶거나 찌는 등의 조리를 통하여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일부 저장기능도 가능하였다.

한편, 우리나라 토기문화의 기원은 BC 6,000년경부터 시작된다.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원시민무늬토기와 둥근덧띠무늬토기가 있으며, 뒤이어 패각으로 무늬를 그린 빗살무늬토기가 나타났다. 청동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가 발달하였으며 철기시대에는 경주시 조양동고분에서는 연질토기(軟質土器)가 출토되었고, 김해 패총에서 출토된 김해토기는 고온에서 구워 만든 경질토기로 삼국시대 신라 토기의 모체가 되었다.

질그릇의 동의어로 ‘꺼매기’가 있다. 꺼매기란 검은 빛깔을 띤 질그릇이란 지역 토속어이다. 이러한 꺼매기의 용도는 다양한데 특히 떡을 찌는 시루의 경우 옹기로 만든 것보다 꺼매기 시루를 훨씬 질이 높은 것으로 친다. 잿물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꺼매기는 흡수성이 강해 떡이 식는 과정에서 물기가 생기지 않아 떡이 쉽게 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물을 긷는 물동이, 오줌이나 인분을 담아 밭에 옮기는 장군, 술이나 감주 등 마실 거리를 담아 이동하기에 편리한 두루미, 곡식을 보관하는 쌀 단지 등으로 많이 이용하였다. 또한 꺼매기는 숨을 잘 쉬어서(흡습성) 옷을 보관하는 등의 건단지로 이용하기에 좋고, 쌀을 보관하면 쌀의 진기가 오래도록 유지되어 밥맛이 좋았다. 또한 물동이나 장군 등을 만들었을 때는 가벼워서 이동이 편리하였다. 다만 견고성이 다소 떨어져 물동이에 물을 가득 길어서 오다가 밑이 빠지는 바람에 물벼락을 맞은 여인들의 이야기도 종종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꺼매기를 굽던 가마는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생존하는 장인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질그릇은 삶의 여러 면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그것은 빈부에 구애됨이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플라스틱을 비롯한 대체용기들에 밀려 그 수가 급감하게 되었다. 동네에 큰일이 있으면 이웃 간에 술을 빚어 부조하였던 ‘감주 두루미’ 역시 전통 혼례가 사라지면서 이제 기억마저 아득해졌다. 그러나 질그릇은 여전히 질그릇으로 예나 지금이나 삶과 문화의 원초적 바탕을 이루는 그릇이기에 영원히 우리 곁에서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0월 21일 미국은 한·미 FTA 발효를 위한 절차를 마치고 공은 우리한테 넘어와 있다. 한·미 FTA를 지켜본 일본과 중국은 화들짝 놀라 우리나라와의 FTA를 서두르고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 수산분야는 잃는 쪽이다. 이럴 때일수록 도자기에 담는 이상적인 정책이 아니라 질그릇에 담을 평범하고 실질적인 대책이 우리 어업인들의 얼굴에 주름살을 줄여줄 것이다. 질그릇에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찾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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