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中唐)나라에 유종원(柳宗元 773-819)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하동(河東-지금의 산서성 영제현) 사람으로 당송팔대가에 포함되는 고문대가(古文大家)다. 그의 시는 특색이 있었는데 자연경물을 묘사하는 데 뛰어났으며 풍격이 청신(淸新)하였다. 그가 쓴 글에 나무 심는 사람 곽탁타 이야기(種樹郭?駝傳)가 있는데 당시의 정치를 풍자하고 목민관의 자성을 촉구 하였다. 곽탁타라는 사람의 원래 이름은 알 수가 없다. 구루병(곱사병)을 앓아 등이 우뚝 솟아 등을 구부리고 다니기에 낙타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고향 사람들은 그를 타(駝)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자신 또한 탁타(?駝)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사는 마을은 풍락향(豊樂鄕)이라고 하는데 장안의 서쪽에 있었다. 곽탁타는 나무 심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모든 장안의 세도가와 부자들 중에 정원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노는 사람들과 과실을 파는 사람들이 다투어 그를 맞아들여 받들었다. 곽탁타가 심은 나무를 보면 간혹 옮겨 심어도 살지 않는 것이 없었고, 크게 무성해지고 일찍 열매가 맺어 많이 달렸으니, 나무 심는 다른 사람들이 비록 몰래 엿보고 모방하여도 누구도 그와 같을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물었더니 그가 답하기를 ‘저 곽탁타가 나무로 하여금 오래 살게 하고 잘 자라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의 천성을 잘 따라서 그 본성을 다하게 할 뿐입니다. 무릇 나무 심는 것의 본성은 그 뿌리가 펴지기를 바라고(其本欲舒), 그 북돋움을 고르기를 바라며(其培欲平), 그 흙은 본래의 것이기를 바라고(其土欲故), 그 다짐에는 빈틈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其築欲密). 그리고 이미 그렇게 끝마치고 나면 움직여서도 안 되고 걱정해서도 안 되며, 떠나가서 다시 돌아보지도 않아야 합니다. 심을 때는 자식을 돌보듯 하지만, 심고서 놔둘 때는 내버린 듯이 합니다. 그래야 천성이 온전해 지고, 그 본성이 얻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나무가 자라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다름이지 나무를 크고 무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또한 나무의 열매 맺음을 억제하고 감소시키지 않을 따름이지, 열매를 일찍 많이 열리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나무 심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부리는 구부러지게 하고 흙을 바꾸며(根?而土易), 그것을 북돋움을 지나치지 않으면 미치지 않게 합니다(若不過焉則不及), 만일 이와 반대로 할 수 있는 자가 있어도 그것을 사랑함에 지나치게 은혜롭거나, 그것을 걱정함에 지나치게 부지런하여서 아침에 보고 저녁에 어루만지며 이미 떠나고도 다시 돌아봅니다. 심한 자는 그 껍질을 손톱으로 긁어서 그것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하고, 그 뿌리를 흔들어서 그것이 엉성하게 심어졌는지 단단하게 심어졌는지를 살펴봅니다.

어떤 자가 그에게 묻기를 그대의 나무 심는 도리를 관리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에 옮겨도 되겠소 하니 곽탁타가 말하기를 ‘저는 나무 심는 것을 알 뿐이지 관리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저의 본업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살고 있는 고을의 관리를 보면 명령을 번거롭게 내리는 것을 좋아하더군요. 백성을 매우 사랑하는 것 같지만 끝내는 백성에게 화를 주더군요. 아침저녁으로 관리가 와서 소리치기를 농사일을 재촉하고, 나무심기를 강권하며, 수확량을 감독하고, 빨리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고 빨리 실로 옷감을 짜라, 아이들을 잘 키우고, 닭과 돼지를 잘 길러라라고 하면서 북을 처 백성들을 모으고, 나무 막대를 두드려 그들을 소집합니다. 우리 소인배들은 저녁밥, 아침밥을 먹지도 못하고 관리들을 위로하기에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저희들의 삶을 번성케 하고 저희들의 본성을 편하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병들고 피폐해집니다라고 말하였다. 이로써 어떤 사람(위정자)은 나무 키우는 것을 물었다가 백성 돌보는 방법을 얻었다고 했다.

우리는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1년 자율관리어업이란 정책을 적극 시행하고 지도자를 양성하고 우수공동체를 육성하여왔다. 그리고 막대한 정부지원도 병행해왔다. 수많은 지도자가 육성됐고, 많은 우수공동체가 탄생했다. 그리고 규제중심의 수동적 자원관리 보호에서 벗어나 자발적인 수산자원관리를 실천하고 있고, 자체 감시를 통한 불법어업 예방활동과 어업인들의 인식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기여했을 뿐더러 우수공동체 브랜드 생산품 개발에도 성과를 보고 있다. 더불어 자율관리연합회도 출범하여 공동체간의 유대도 강화되고 있는 반면 정부와의 관계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필자는 10년이 경과한 이 시점에서 자율관리 공동체가 약 900개소, 참여인원도 6만3천명에 이르고 있어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질적으로도 만족할 만한 진전인지 또한 그 많은 실패 사례는 분석이 되었는지? 정부의 정책변화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자율보다 정부에 의한 타율의 비율이 높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자율의 생산기반을 조성하는데 일정부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자율관리 공동체의 정부의존도가 심화되고 자율이란 미명하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래의 정부의존형 관리어업으로 나가고 있지는 않은지, 정부나 공동체의 지도자도 한번 쯤 자신을 돌아볼 때다.

유종원은 곽탁타의 나무 심는 도리를 빌어서 모든 일에 있어서 백성에게 간섭하는 당시의 관치를 풍자하고 목민관의 자성을 촉구하였다. 현재 우리의 자율관리어업 정책에 반면교사로 삼으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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