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는 원(元)왕조시기 말엽과 명(明)왕조시기 초기에 활동한 나관중(羅貫中)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의 생애 자체가 불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삼국지연의는 청(淸)왕조 초기 모종강(毛宗崗)이 120회로 이루어진 모본이며 나관중이 썼다는 원본은 확인하기 어렵다.

연의(演義)란 민간에 전래되던 이야기나 역사적 사실에 작가가 상상력을 가하여 긴 장편 이야기로 확대하여 소설로 만들어낸 뻥의 이야기로 정사와는 확연이 다르다. 따라서 삼국지연의, 수호지, 서유기, 홍루몽 및 금병매 등이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삼국지연의에서 실제 역사와는 달리 유비를 높이고 조조를 악인 취급하는 것도 비슷하다. 조조는 간교의 극치, 유비는 의기의 극치 그리고 제갈량은 지혜의 극치로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이 소설이 위·촉·오로 나뉘어 패권을 다투던 삼국시대(221-265)의 역사가 촉의 유비가 주도한 것처럼 유비를 중심으로 썼기 때문이고 촉나라의 영웅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진다는 비극으로 끝나 해피엔딩을 기대하던 독자들을 애석하게 만들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연의소설은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 이야기를 세월이 흘러오는 동안 수도 없이 개작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의 본격적인 형성기가 원(元)왕조 시기였으며 한 왕조의 부활을 위해 노력하는 유비·제갈량·관우·장비를 가장 중요한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어 원 왕조 시기라는 특정한 시기에 팽배했던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적 분유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몽골족에게 무력으로 정복당했지만 현실적으로 저항할 길을 찾지 못했던 한족들의 민족주의적 저항의식이 삼국지연의에 소설적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개봉된 용의 부활이란 영화에 조자룡을 부각시킨 영화가 있다. 조자룡역(役)에는 홍콩의 세계적인 배우 유덕화가, 그리고 조조의 손녀가 등장하는데 중국계로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매기 큐가 조영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천민출신 조자룡이 혈혈단신으로 조조의 1만 대군을 상대로 유비의 아들 유선을 구할 때 조조의 손녀 조영이 그저 지켜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미처 구하지 못한 유비의 부인은 아들을 조자룡에게 맡기고 근처 우물로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사에는 유비의 부인은 이미 죽고 없었다. 유비는 조자룡이 자기의 아들을 구해서 바치자 아들을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너 때문에 유능한 장수를 잃을 뻔했다는 이유에서다. 조자룡은 오호장군이 되나 말년에 조조의 손녀 조영이 중국식 현악기로 지휘하는 위나라 10만 군사들에 쫒기어 봉명산 최후의 일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 유비의 대를 이어 유선이 촉나라 임금이 되었으나 결국 위나라에 망하고 만다. 머리를 다친 유선은 왕으로서의 자질이 띨(?)해서 간신들을 신뢰하고 충신을 멀리하는 무능한 통치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의 작자는 관우와 장비의 비명횡사, 도원결의를 지키지 못한 분노로 복수에 눈이 먼 유비의 몰락과 병사, 만성결핵으로 천운이 다한 제갈량의 쓸쓸한 최후 그리고 잔인무도한 군벌과 간신배들의 득세 등 답답한 현실의 역사를 끌어와 휘황한 삼국지연의의 이야기와 무정한 대륙의 역사를 봉합시켜 독자의 오감을 자극시켜 희로애락을 이끌어내고 독자들로 하여금 밤새워 읽게 만든다. 

장수 하후돈은 화살이 눈에 박히자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라고 하여 화살 박힌 눈알을 먹었다고 하고, 조조는 손권. 유비의 연합군과 적벽에서 싸워 대패하고 북쪽으로 도망간 원래의 적벽은 양자강을 따라 200km 거슬러 호북성의 한지역이 바위가 벌겋게 달아올라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오 나라장수 주유(周瑜)가 붉은색으로 써놓은 곳이 진짜 적벽인데 이 외에도 수십 곳에 진짜 적벽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름대로 전설이 내려온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임진강의 적벽, 대구 달성군 화원면의 적벽, 그리고 바다이기는 하지만 전북 부안군에도 적벽이 있다. 또 삼국지연의에는 유비를 묘사하기를 귀가 커서 어깨와 닿았고, 팔은 길어서 손이 무릎을 지났다고 ‘뻥’을 치고 있다. 고우영은 유비를 형상화하기를, 보고 또 봐도 화성인 (初見再見火星人)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수협이 공식적으로 발족한 것은 1962년이니 내년으로 반세기 5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고, 강산이 변해도 다섯 번은 변한 셈이다. 이번에 수협정신의 역사적 의미를 계승하고 조직의 미래비전 제시를 위해 수협 50년사를 편찬한다고 하고, 그간 발굴되지 않았던 숨겨진 자료와 빛바랜 사진들 그리고 역사적 고증을 철저히 한다고 하니 너무나 기대가 크다. 수협 직원은 물론 수협동우회 그리고 수우에 회원들에게까지 자료 기증을 요청하고 있다. 이번에 만들어지는 50년사는 과거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50년, 100년을 바라보는 푸른 미래도 담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산청 등 정부기관과 수협 등 수산단체는 물론 일반 기업에서도 너도 나도 10년사에서 50년사까지 발간하고 있다.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거의 예외 없이 정사(正史)로 쓴 자료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당일 서가로 직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현실이다. 왜냐하면 정사의 특징은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니 책장에 꽂히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서는 재미있게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삼국지연의에서와 같이 뻥의 역사를 쓸 수는 없다. 정사는 정확히 쓰되 별책 또는 부록으로 수협 야사를 쓰는 방법은 어떨까 한다. 오늘까지 오는 동안 숨겨져 있거나 알려져 있어도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이야기를 정리하면 될 것이다. 시기를 일실하면 영원히 세상에 빛을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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