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게(sea urchin)류는 세계적으로 약 900여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약 30여종이 서식한다고 한다. 성게는 종류에 따라 식성이 다르기는 하지만 많은 종류가 암석을 덮은 해조류나 고착성 동물을 먹는다. 옛 문헌에는 성게는 해구(海毬) 또는 해위(海蝟)라고 했고, 우리말로는 몸 전체에 가시가 나있어 밤송이와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밤송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 Hemingway)는 평소 쿠바를 사랑했고, 자주 방문하여 아바나 동쪽의 작은 어촌마을 “코히마르”에서 요트를 타고 바다낚시를 즐겼다. 이후 1939년 쿠바에 정착했다가 1960년 쿠바혁명 직후 미국으로 돌아온 후 이듬해 엽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신문기자 또는 의용병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그때
지난달 말 C일보의 국제란에 ‘석유 돈줄 끊긴 IS, 양어장. 차 매매로 돈벌이’라는 제목의 로이터통신의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 IS(Islamic State 또는 Daesh)는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로 알카에다 이라크지부에서 출발해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이슬람국가를 자처하고 있는 조직이다. 이 조직이 미국 등 연합군의 공격으로 점
힐링(healing)이란 단어가 폭 넓게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사전적 의미는 회복과 아묾의 뜻을 포함하는 치료 또는 바람직하지 않은 건강상태의 극복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힐링은 내.외과의 의학적인 치료(治療)보다는 몸과 마음을 치유(治癒)한다는 면이 강하다고 하여, 성경(Bible)에서 그 어원을 찾는 이도 있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관
지난달 말 ‘섬진강기차마을’이 있는 곡성을 다녀왔다. 섬진강은 참으로 아름다운 강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님은 전남.북 및 경남의 3개 도 12개 군을 거치면서 5백리 먼 길을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은 여성적 부드러움의 강이라고 노래한다. 반면 “토지”의 박경리님은 억척스런 생명력의 근간을 이루는 강이라고 했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마을
충남 당진은 통일 신라 때 당 문화의 수입창구였다.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는 당진포가 중국의 산동반도와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하다는 이유로 당과의 교역창구로 당진포를 개방했다. 따라서 당진포는 양국간의 사신왕래와 문물의 교역을 가져와 크게 번성했다. 양국 간 교역이 활발해지자 당대(唐垈)라는 당나라 사신 숙소가 설치됐다. 또한 신라 진흥왕 25년에는 중국 사신
노량진(鷺梁津)은 한강변의 삼전도(三田渡), 금강연안의 웅진(熊津) 및 낙동강 유역의 삼랑진(三浪津)과 같이 나룻배가 발착하는 도선장(渡船場)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진취락(渡津聚落)이다. 노량진 동쪽 언덕 위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참형을 당한 사육신묘가 자리하고 있는 충절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1200만 서울 시민의 먹거리를 책임진 노
낡은 목선 한 척으로도 내일을 꿈꾸는 만리포 사람들 그 겁센 팔뚝으로 붉은 해를 건진다. 천 년 전에도 바다는 쪽빛이었다. 시인 박미라님이 쓴 ‘만리포 연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위치한 만리포는 과거에는 어항이고 교역항이었으나 현재는 해수욕장으로 더 유명하다. 만리포의 옛 이름은 ‘만리장벌’이다. 조선조 명나라에 사신을 환송할
충남 부여군 양화면 입포리에 ‘입포나루’라는 안내판과 회상시비(回想詩碑)가 서있다. 배들의 접안이 용이한 입포(笠浦)나루는 금강변 최고의 포구로 6.25 직전까지도 강경의 갱갱이 포구에 비교될 만했으며, 많을 때는 1,500여척의 어선이 드나들었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하루 평균 2백∼3백 척의 황포돛배가 곡물과 생필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접안했으며,
매년 3월 하순을 전후하여 충남 서천군 마량리(마량포구) 동백나무 숲에서는 주꾸미 축제가 열린다. 동백나무 숲은 500년 전 이곳을 관할한 마량 수군첨사(水軍僉使)가 마을의 안녕과 안전한 뱃길을 기원하며 심었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특히 마량진은 우리나라 최초로 성경(聖經)이 전해진 곳으로 전래비가 서 있다. 이외에도 부안(격포), 보령(무창포), 태안(
봄 조개 가을낙지라고 봄 조개는 입맛을 돋운다. 피조개는 ‘피안다미조개’의 약어이다. 피+안다미+조개의 구조에서 안다미는 생략되고 피조개가 되었다. 우리말 ‘안(內)+담(藏)+이’에 의하여 만들어진 고유어 ‘안다미’는 한자어 안담(按擔, 짐을 떠맡음)에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안에 무엇을 담기 위하여 입구를 넓게 만든 것’ 또는 ‘그릇 안에 꼭꼭 채워 담다’
젓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3-5세기경 중국문헌 ‘이아(爾雅)’라는 서적에 지(鮨)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지(鮨)자는 생선으로 만든 젓갈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신문왕(3년,683년)이 왕비를 맞이할 때 납폐 품목에 쌀, 술, 육포와 더불어 ‘해(醢, 젓갈)’가 등장한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전 세계에 서식하는 계(蟹)의 종류는 약 4500종이며 우리나라에도 약 180종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대표 종으로는 대게, 털게, 꽃게, 농게, 칠게, 달랑게, 말똥게 등이 있다. 1997년 탤런트 신구가 유행시켰던 광고멘트인 “니들이 게맛을 알아”란 말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물맞이겟과의 하나인 대게(Chionoecetes Op
충남 태안군에 속한 몽대포(夢垈浦)는 망미포(望美浦) 또는 경포(鏡浦)라고도 불리던 태안군 남면의 조그마한 어촌마을 포구다. 그러나 일찍이 중국과 교역을 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인접 안흥항(安興港)을 거점으로 한 조공선이 기항지로 삼던 포구이기도 했다. 몽대포는 몽대 문씨(文氏)들의 집성부락이 있고 그들에 의해 약450여년 전 개항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
얼마 전 영하 16∼17도를 오르내리던 날씨가 벌써 입춘과 설도 지났다. 매년 봄이 무르익으면 서천군 장항읍 장항항의 물양장에서는 해마다 꼴뚜기와 갑오징어의 풍어를 기원하고 꼴갑의 우수성을 알리는 ‘꼴갑축제’가 열린다. 꼴뚜기는 타우린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갑오징어는 오징어류 중에서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장항은 1938년 광주와 함께 읍으로 승격했는데 장
2015년도 제일 많이 잡힌 어류가 전갱이(horse mackerel, saurel)라고 지난 1월 17일 해양수산부가 발표했다. 전갱이 어획량이 전년 대비 81% 증가했다고 한다. 멸치, 오징어, 고등어에 이어 4위를 나타냈다. 전갱이는 언제부터 어획했는지 확실한 기록이 없다. 조선 전기까지 전갱이라고 추정할만한 이름이 없는데 후기에 들어서는 전갱이가 잡
바다에서 생산되는 미더덕은 육지의 더덕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육지 더덕의 어원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다만 1431년 간행된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이나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 ’가덕(加德)‘이라 했다. 가(加)는 더할 가이나 이를 ’더‘ 로 읽고 덕(德)은 그냥 ’덕‘으로 읽는 이두(吏讀)식 표기로 발음하여 ’더덕‘이 됐을
충남 태안반도 남쪽 천수만(淺水灣)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오천항(鰲川港)은 세조 때부터 충청수군절도사영(忠淸水軍節度使營)이 설치되었다가 고종말엽인 1896년 절도사영이 폐지되기까지 이조 약 430년간 조선 전체 수군의 1/3을 차지하는 수군의 본영이 있던 역사적인 항(港)이다. 효자도, 월도 등 60여개의 유.무인도가 방파제 역할을 하여 폭풍우가 몰아쳐도
한 세기 전 강경포구는 함경도 원산항과 함께 조선의 2대 포구(浦口)로 영화를 누렸던 곳이었고, 강경장(江景場, 갱갱이장)은 평양 대구와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으로 번성했다. 밀물과 함께 만선기를 휘날리며 몰려들던 어선들과 거룻배들은 온데간데없고 한적한 포구가 되어 그 화려했던 강경포구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침묵으로 말해주고 있다. 강경은 내륙평야 곡창지
바다의 선물이자 인류 최초의 보석이라 일컫는 진주에 관한 오래된 기록은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주(周)나라 때 작자 미상이지만 유교경전의 하나인 이아(爾雅 BC 약 1000년)라는 책에 기록이 있다. 또 서경(書經)의 우공편(禹貢篇)에도 우왕(禹王 BC 2200년)에게 진주를 공물(貢物)로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이 외에도 중국에서는 BC 2500년경에